2000년 초 조계종 정대 총무원장의 ‘이회창 총재 비하 발언 파문’은 불교계는 물론 사회 전체의 이슈로 떠올랐다.
당시 총무원장인 정대 스님은 “이 총재가 집권하면 희대의 정치 보복이 난무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대한민국정부 출범이래 종교계가 정치에 가장 깊숙이 개입한 듯한 인상을 주는 이 발언은 수그러들 기미 없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조계종 홈페이지(www.buddhism.or.kr)에는 며칠 사이 수천 개에 달하는 네티즌들의 항의글이 올라왔고 접속 폭주로 서버가 다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대는 즉각 총무원장직을 사퇴하라`, 차라리 환속해서 민주당 공천이나 받으라`, `정대가 바로 말불시대의 주역이다‘, `무명 선승들이 지켜온 불교를 한순간에 파괴한 발언’ 등등 대부분이 정대스님을 비난하는 내용이었으며 ‘당신의 호남 말투만 아니었더라면 그래도 좀 덜했을 것이다’, ‘전주 출생이라더니 역시 가재는 게 편이다’ 등의 지역감정이 담긴 글들도 상당수였다.
실제 정대 총무원장은 꾸준히 청와대를 출입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정대 총무원장 반대세력들은 이총재 비하 발언 파문을 틈타 “정대가 회동 자리에서 김대통령을 ‘아버지’라고 불렀다”는 등의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불교계 일각에서는 ‘정화개혁회의와의 재판에서 손을 들어준 것에 대한 화답’이라는 해석도 흘러나왔다. 공교롭게도 발언 파문 사흘 전인 1월 16일에 정화개혁회의가 서울고등법원에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의원 72명을 상대로 제기한 `자격상실확인` 항소심이 기각된 것.
정화개혁회의는 98년 10월 12일 조계사에서 현 총무원과 유혈충돌을 빚었던 ‘조계종 사태’의 장본인들이다.
이후에도 정대 총무원장은 지난 4월 9일 ‘호국 안민기원 및 경북지방경찰청 경승 발대식’에서 민주당 김중권 대표에게 “연초 보복정치 발언은 소신”이라고 피력, 변함 없이 여당을 지지하고 있음을 증명해 또 한 차례 물의를 일으켰다.
실상 권불(權佛)유착은 별로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표현이다. 종교지도자의 입김을 이용하려는 정치권과 정치권에 기대어 교세를 확장하려는 종교계의 수십 년에 걸친 관행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불자와 일반국민들의 비판정신, 영향력이 나날이 커지는 데도 이를 개의치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정치권엔 ‘영남-불교, 호남-기독교’란 통설이 있다. 영남에선 불교세가, 호남에선 기독교세가 강하다고 한다.
4월 2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시민사회와 종교’ 세미나에서 불교계 대표로 나온 최승천 참여불교재가연대 편집위원장은 “1994년 개혁종단 출범 이후 없어졌던 ‘호국대법회’ 류가 대선을 앞둔 97년 슬그머니 부활됐다”며 “정치권과 모종의 거래가 오가는 듯한 요즘, 종단은 10년 전으로 후퇴한 것 같다”는 조계종 내부 관계자의 탄식을 전한 바 있다.
마침 이날에는 롯데호텔 크리스털 볼룸에서 김대통령과 정대 총무원장이 나란히 참석한 가운데 부처님 오신날 기념 `민족화해협력과 조국통일기원 대법회`가 개최되었다.
얼마 전에는 불교 4대 종파 중 하나인 진각종의 각해 총인이 "김종필 명예총재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말해 당시 정가에 화제로 떠오른 ‘JP 대권론’과 맞물려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각해 총인은 지난달 17일 진각종 제26대 효암 통리원장 취임 법회에 참석한 자민련 김종호 총재권한대행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JP 만큼 경륜을 갖고 계신 분이 어디 있느냐", "이번에는 꼭 김 명예총재가 해야한다"고 거듭 김명예총재를 치켜세워 구설수에 올랐다.
대선이 내년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이처럼 올해 초부터 불교계의 동향은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종교가 우리 사회, 특히 선거와 깊은 상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 때문에 대권주자들은 1600만 명의 불자들을 포섭하기 위해 불교계 지도자들과 잦은 접촉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러나 차기대권을 염두에 둔 정치권의 행보에 편승해, 종단 혹은 개인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불교계의 잘못된 태도에 대해 국민들은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불교 NGO의 한 관계자는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정치와 불교는 항상 서로를 이용하며 공존해왔다. 하지만 고려 말 ‘신돈의 난’처럼 그 정도가 지나쳤을 때 대규모의 갈등을 초래했던 것도 사실이다”라며 “불교계는 오로지 부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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